생활상식
2014년 가장 잘 팔린 명작

 
책 읽고 싶을 땐 짬을 내기 어렵고, 막상 시간이 나면 뭘 읽어야 할지 막연하다. 이 늦가을, 고전 혹은 명작 소설에 도전하는 것은 어떨까. 교보문고에 의뢰해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 세계문학전집을 통틀어 올 초부터 11월 중순까지 가장 많이 팔린 100권을 뽑아봤다. 그 가운데 톱10을 소개한다. 명작 중에서도 사랑받는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다.


명작 혹은 고전 반열에 든 ‘세계문학’은 번역이라는 해협을 뛰어 넘고, 세월이라는 괴물의 파괴력마저 이겨낸 최후의 승리자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시인 최승자(62)는 한 인터뷰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세계문학에서 배웠노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안에 무수한 시대의 체험과 운명, 장구한 역사와 문화가 들어 있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책 판매에 있어서는 명작 세계문학의 입지가 그렇게 확고하지 않다. 톱10 안에 든 작품들은 물론 자체 생명력을 가진 것들이다. 그러나 작품의 순수한 가치 이외에 다양한 외부 변수가 판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가령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가 2위에 오른 것은 이윤기라는 걸출한 번역가의 영향이 크다. 거기에 2012년 당시 명지대 교수였던 김정운씨가 거칠 것 없는 삶을 그린 소설 내용에 감동한 나머지 교수직을 던진 ‘사건’이 아직까지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게 출판사의 자체 분석이다.


세계문학전집은 번역이라는 장벽과 세월의 한계를 뛰어 넘어 살아남은 이 시대의 명작 소설들을 모은 것이다. 숱한 인간 군상의 체험과 운명, 당대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살아 있는 ‘인생 교과서’라 할 만하다. 정신을 살찌우는 마음의 양식이다. [사진 민음사]

 4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9위 『디어 라이프』(이상 문학동네)는 이른바 ‘노벨상 특수’의 결과물들.

 3위에 오른 『리스본행 야간열차』(들녘)는 2007년에 출간됐다. 하지만 지난 6월 소설을 영화화한 동명의 영화가 국내 개봉하면서 판매가 크게 늘었다.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책은 올 들어 5만 부나 팔렸다.

 6위에 오른 더클래식 출판사의 『어린 왕자』는 세계문학전집 시장 역시 치열한 마케팅의 각축장임을 보여준다. 출판사는 20대 여성 독자를 겨냥해 핸드백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가로·세로 10X13.5㎝ 크기의 포켓북으로 제작했다. 도서정가제 시행 전까지 영문·한글판 두 권을 각종 행사를 통해 3300원에 팔았다.

 민음사는 1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비롯해 모두 5권이 10위 안에 들어 관록을 과시했다.

 ◆1위:『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민음사, 485쪽, 1만1000원

 200명쯤의 여자와 잤다고 공언하는 바람둥이 외과의사 토마시와 사랑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는 테레자 등 가벼움과 무거움을 상징하는 인물들의 대립과 결합, 1968년 소련의 프라하 침공이라는 역사적 현실 속에 망가지는 개인의 이야기 등을 버무려 삶을 모순된 것들이 공존하는 한바탕 희비극으로 그린 쿤데라의 대표작이다. 소설 제목이 일상어처럼 쓰였을 만큼 1980년대 말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처음에는 단행본으로 출간됐다가 2010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됐다. 전집 234번. 88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국내 개봉돼 인기를 끌었다.

 ◆2위:『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482쪽, 1만800원

 저자 카잔차키스가 1957년 사망해 저작권이 소멸된 작품이지만 경쟁 세계문학전집 출판사들이 출간을 꺼릴 정도로 이윤기 번역본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1930년대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호방한 60대 사내 조르바와 소심한 30대 지식인 화자의 나이와 성격 차를 뛰어 넘은 우정, 터무니 없는 광산 개발과 실패라는 사건을 통해 거침없는 자유, 정열 가득한 삶에 대한 동경을 그린 작품이다.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조르바는 항아리 만드는 데 방해된다며 도끼로 자기 손가락을 잘라버릴 정도로 막무가내 캐릭터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21번.

 ◆3위:『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들녘, 586쪽, 1만6000원

 낭만적인 제목이지만 가벼운 작품은 아니다. 분량이 작지 않고 주제도 묵직하지만 추리 성격을 가미해 흥미롭게 읽힌다. 시계처럼 정확해 제자들로부터 세계·우주를 뜻하는 라틴어인 ‘문두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스위스 베른의 고전언어학 교사 그레고리우스가 갑작스럽게 포르투갈에 마음을 빼앗겨 밤기차를 잡아타고는 프라두라는 의문의 인물의 행적 추적에 나서는 이야기다. 뻔한 삶의 행로에서 벗어나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은 탈주 욕망, 그 모험의 끝에서 얻은 삶에 대한 통찰을 다룬다. 출판사가 최근 시작한 ‘세계문학의 천재들’ 1번이다.

 ◆4위:『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리크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277쪽, 1만원

 모디아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설 탐정 기 롤랑이 잃어버린 과거와 정체성을 찾아 끈질긴 탐문을 벌이는 얘기다. ‘자아 찾기’는 인간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공통의 숙제라는 점에서 소설의 주제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45년생인 모디아노는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대계 이탈리아인인 그의 아버지는 나치 치하에서 고초를 당했을 것이다. 모디아노는 역시 유대계인 기 롤랑이 탄압을 피해 프랑스를 탈출하려다 기억을 잃는 사고를 당하는 설정을 통해 전쟁의 아픔에 접근한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번.

 ◆5위:『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40쪽, 8000원

 노벨상 작가인 헤세의 성장소설. 불꽃 같은 삶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수필가 전혜린(1934∼65)이 유고집에서 이 책을 두고 "독일 전몰(戰歿) 학도들의 배낭 속에서 꼭 발견되는 책""데미안을 읽고 자살한 친구 무덤에 책을 함께 묻었다"라고 표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1960년대 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형처럼 의젓한 친구 데미안의 도움으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의 실상에 눈 뜨는 내용이다. "새는 알에서 깨어나려 한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소설 속 구절로 유명하다.

 ◆6위:『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더클래식, 한글·영문판 각 155·151쪽, 7900원

 2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지금까지 1억2000만 권 이상 팔렸고, 아직도 매년 200만 부 가까이 팔리는 글로벌 베스트셀러다. 국내에도 수십 개의 판본이 있다. 작가이자 항공기 조종사였던 생텍쥐페리는 1940년 조국 프랑스가 독일 수중에 떨어지자 미국으로 피신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그가 이국 땅에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명작을 썼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작가의 분신인 불시착 조종사, 여우, 어린 왕자의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우정의 의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의 어려움 등 영원한 인생철학을 들려준다.

 ◆7위:『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280쪽, 9000원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 흘리지 않고, 단지 태양 빛이 뜨겁다는 이유로 아랍인을 쏴죽인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다는 부조리 철학을 드러낸 카뮈의 대표작이다. 사형 선고를 받은 뫼르소는 신을 믿는 것은 시간낭비라며 끝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인간이 다른 인간의 행동에 대해, 그의 됨됨이를 문제 삼아 심판할 권리 같은 것은 없다고 절규한다. 모든 인간적 가치가 무너져버린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싹튼 절망의 철학이다. 올 초 번역 논란에도 불구하고 고려대 김화영 명예교수의 번역이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다.

 ◆8위:『1984』,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민음사, 444쪽, 8500원

 ‘빅 브라더’에 의해 구성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철저하게 감시되는 디스토피아적 근미래(1984년)를 그린 오웰의 1949년 소설. CCTV와 각종 도·감청의 확산으로 인해 자유로운 사생활이 위협 받는 2014년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가상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도시 ‘에어스트립 원’(런던)은 성욕까지 통제하는 사회다. 아이를 갖기 위한 목적에만 허용할 뿐 쾌락을 위한 섹스는 금지돼 있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숨막히는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금지된 일기 쓰기를 감행하고, 줄리아와 연인관계를 유지하다 처벌당한다.

 ◆9위:『디어 라이프』,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437쪽, 1만3500원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인 캐나다 단편소설 작가 앨리스 먼로의 최근작 소설집이다. 열 편의 단편과 네 편의 자전적 이야기가 실려 있다. 노벨상 발표 직후인 지난해 12월 초 출간돼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먼로는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통한다. 시대와 역사 같은 커다란 이야기 대신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연을 차분하고 정제된 언어, 섬세한 시선으로 풀어내 새로운 인간 이해에 이르게 한다는 평이다. 첫 머리에 실린 ‘일본에 가 닿기를’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초짜 여성 시인의 도발적인 일탈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10위:『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민음사, 286쪽, 8000원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인생의 절반 가량을 철저한 은둔 속에서 지내다 2010년 사망한 샐린저의 대표작이다. 원래 단행본으로 출간하다 2001년 세계문학전집에 포함시킨 이후에만 45만 부가 팔렸을 정도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6피트가 넘는 껑충한 키, 허위를 참지 못하는 성격의 열여섯 살 홀든 콜필드가 성적 불량으로 네 번째 고등학교에서마저 퇴학당하자 크리스마스 직전 뉴욕 거리를 사흘간 방황하는 내용이다. 미숙하고 민감한 10대의 눈에 비친 세상의 불결함, 그에 대한 분노와 격정을 잘 살려 젊은 독자가 많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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